[인터뷰] "모성애→전투력"..'반도' 이정현, 연기를 요리하는 법①

enews24 고홍주 기자 | 입력 2020-07-21 오후 5:02:00 | 최종수정 2020-07-22 오전 6:43:31


[인터뷰] "모성애→전투력"..'반도' 이정현, 연기를 요리하는 법①
영화 ‘반도’가 국내를 넘어 해외 극장가까지 시원하게 강타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국 속 이어지고 있는 흥행 질주, 그야말로 고무적인 성과다. 배우들의 감회도 남다를 터. ‘반도’ 개봉 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현은 “시국이 이래서 관객 분들이 많이 안 오실까 걱정을 했는데, 극장가에 활력이 생긴 것 같아 감사하고, 뿌듯하다. ‘반도’를 기점으로 영화계가 다시 활력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도’(감독 연상호)는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다. 이정현은 극 중 강인한 생존력과 모성애로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남은 민정 역을 맡아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강렬한 여전사 캐릭터로 변신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강인한 모성애로부터 강인한 전투력을 갖게 되는 민정의 역할에 공감이 많이 갔다. 정말 평범한 어머니들이 민정과 같은 대한민국 땅에서 631부대와 같이 산다면,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쉽게 공감이 됐고, 관객 분들도 똑같이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 한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연상호 감독과 이정현. 두 사람이 작품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 감독은 ‘반도’의 민정 역할을 설계하며 가장 먼저 이정현의 얼굴을 떠올렸고, 직접 캐스팅 제안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연상호 감독님에게서 문자 연락이 왔다. ‘정현씨, 저랑도 같이 영화 하셔야죠’라며 한 번 읽어보라고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돼 있는데, 민정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다. 전투력, 모성애와 같은 키워드가 와닿았다.”

[인터뷰] "모성애→전투력"..'반도' 이정현, 연기를 요리하는 법①
[인터뷰] "모성애→전투력"..'반도' 이정현, 연기를 요리하는 법①
현장에서 본 연상호 감독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이정현은 연 감독을 ‘천재’라고 부르며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연상호 감독은) 비주얼적으로 천재적이라 기획 단계부터 영화의 모든 이미지가 머릿속에 다 있다”는 문장과 함께 이정현의 촬영 후일담이 이어졌다.

“촬영 들어가기 2~3달 전부터 액션스쿨에 다녔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연상호 감독님은 액션을 길게 촬영하지 않으셨다. 몇초 단위로 촬영한 것과 다음 날 촬영한 장면과 연결하시는데 그런 점들이 놀라웠다. 쉽고 빠르게, 안전하고 필요한 만큼 찍으신다. 컷 계산이 천재적이다.”

이정현은 직접 무대를 기획하는 아티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출연한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서는 직접 조명과, 스모그 등의 특수효과까지 세세하게 적어둔 스케치북을 공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가수 활동할 때도 콘셉트 구상을 스케치북에 그려 PD들에게 보여줬고, 그래서 별명이 ‘공포의 스케치북’이었다는 게 이정현의 이야기다. 영화 ‘반도’ 촬영을 앞두고 스케치북에 그려넣은 그림은 어땠을까.

“제가 따로 준비할 게 없었다. 감독님께서 애니메이션을 하셔서 그런지 콘티가 정확했다. 프리 프로덕션도 철저히 준비해주셨고, CG도 이미 1년 전에 작업해놓으셨더라. 너무 기대를 하는 작품이라 신이 나서 여러 생각을 하고 갔는데, 현장에 가서 보니 너무 완벽하게 세팅이 돼 있었다. 민정 헤어도, 의상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가 돼 있더라. ‘나는 연기만 하면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게 갖춰져 있는데 현장도 빨리 끝났다.”

극 중 민정은 남다른 생존력과 모성애로 폐허가 된 땅에서 4년 넘게 살아남은 캐릭터다. “강인한 모습과 감정적인 부분들이 너무 잘 어우러져 있는 배우”라는 연상호 감독의 극찬처럼, 이정현은 탈출을 위해 모든 것을 건 강렬한 액션과 절박한 감정 연기까지 손색없이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이정현은 모성애 연기에 대해서 “제가 다섯 자매 중의 막내인데 조카가 8명이다. 조카들을 자식처럼 키우고 돌봤다”며 “현장에 가보니 이레와 이예원이 너무나 잘하더라. 보자마자 '엄마, 엄마'하면서 절 따랐다. 평소엔 너무 천진난만하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곧바로 몰입해서 연기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제 딸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모성애→전투력"..'반도' 이정현, 연기를 요리하는 법①
[인터뷰] "모성애→전투력"..'반도' 이정현, 연기를 요리하는 법①

평소 좀비물을 즐겨 본다는 이정현답게 과거 '브이(V)' 앨범 당시 좀비 콘셉트를 선보인 적도 있다. ‘반도’ 촬영 역시 그에게는 흥미를 자극하는 현장이었다. 이정현이 본 K좀비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더 섬세하고 디테일하다. 외국 좀비보다 관절을 더 잘 쓴다. 촬영하면서 좀비 연기하는 분들을 많이 관찰했다. 다들 무용을 해서 그런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일 정도로 디테일하고 멋있었다. 좀비 특수 분장도 우리나라가 참 잘 한다. 촬영할 때도 관찰을 많이 했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 더 멋있었다.”

이정현은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데뷔한 뒤 1999년 가수로 활동하며 '와', '바꿔', '줄래', '미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남겼다. 2011년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으로 스크린에 복귀해 영화 '범죄소년', '명량',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플릿', '군함도' 등 장르를 불문하고 매 작품 대체불가한 연기력을 입증했다.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주목을 많이 받았고, 더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역할이 들어오지 않아 많이 힘들어 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가수 활동도 시작했는데, 가수 이미지가 강해서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석에서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는데 저를 보시더니 대뜸 ‘왜 은퇴했냐’고 물어보시더라. 그게 아니고 ‘작품이 안 들어온다’고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놀라셨다. 그러면서 주신 작품이 ‘파란만장’이었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노개런티 독립영화라 회사에서 저 몰래 안한다고 했더라. 그런데 박찬욱 감독님이 어느날 그 시나리오를 보내주시면서 저에게 어울린다고 말해주셔서 그 작품을 하게 됐다. 감독님 덕분에 다시 자신감을 찾고 영화를 할 수 있었다. 제 결혼식에 축사도 해주셨다. 제게 있어 정신적 지주이자 가족 같은 분이다.”

올해로 데뷔 25년 차. 이정현은 “30대 들어서면서 배운 건 내려놓고, 주어진 일 하나가 생길 때 최선을 다하면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좋더라. 항상 기대를 안 한다. 그래서 상처를 안 받는 것 같다. 일이 주어지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목표를 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20대 때는 항상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괴로웠다. 상처도 받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저는 그냥 나이들 때까지 계속 연기하고 싶다. 시나리오를 계속 받는 배우가 됐으면 하고, 앞으로도 감독님들이 다양한 작품을 함께 하자고 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제공=NEW


고홍주 기자

방송 주요 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HOT 영상

                          HOT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