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이끈 제작자 변두섭 조현길 김종학, 왜 모두 죽음을 택했을까

enews24 이인경 기자 | 입력 2013-07-23 오후 1:58:56 | 최종수정 2013-07-23 오후 5:38:56


"김종학 PD를 보며 드라마 제작자의 꿈을 품었는데, 이 상실감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한국 드라마의 거장 김종학 PD(향년 61세)가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이 비통에 빠졌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류를 이끌며 한국 연예계의 꽃을 피운 1세대 제작자들이 올해 무려 세명이나 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류' 이끈 제작자 변두섭 조현길 김종학, 왜 모두 죽음을 택했을까
1월 초 KBS2 드라마 '아이리스'와 SBS '아테나:전쟁의 여신' 등을 제작한 조현길 대표가 자살했고, 이어 '양수경 남편'으로도 유명한 변두섭 예당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에 김종학 PD까지 자살 소식이 이어지면서 연예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이다.

연예관계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이들 세명의 제작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세 제작자는 사망 직전 작품이나 투자 실패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학 PD는 유작이 되어 버린 100억원 대작 '신의' 제작 단계부터 각종 구설의 주인공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무리한 투자 유치와 편성 단계에서의 난항, 시청률 저조로 인한 막대한 자금 손실, 김희선 등 '신의' 출연 배우들로부터 출연료 미지급 건으로 소송 당한 뒤 언론에 오르내린 상황 등 그를 벼랑으로 몰고간 사건들이 한두건이 아닌 것.

최근에는 지인들과의 만남도 꺼리면서 연락이 끊어지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고인이 설립한 김종학 프로덕션과 2009년 헤어진 후, '신의'로 재기를 노렸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굉장히 힘들어했다. 워낙 내색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이 정도로 힘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마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배임 횡령 듬의 혐의까지 받는 등 명예가 실추되어서 심적으로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비슷한 상황은 1월 사망한 조현길 대표(향년 48세)에게도 발생했다. 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한식당 주차장 차안에서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사망했다. 김종학 PD 역시, 집이 아닌 고시텔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사망한 것으로 볼 때,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이러한 극단적이면서도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 대표는 200억원이 투입된 '아이리스' '아테나: 전쟁의 여신' 외에도 영화 ‘몽정기’ ‘가문의 위기’ ‘누가 그녀와 잤을까?’ ‘포화 속으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제작하거나 기획한 유명 제작자다. 지난해에는 프로야구 류현진 등 스포츠 스타를 관리하는 미디어앤파트너스 대표를 맡기도 했다.

조현길 대표의 지인은 "누구보다 심성이 선하신 분이며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아테나'가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뒀고 이후 제작자로서의 입지가 여의치 않았다. 한식당과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제작자로서의 상실감이 컸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에 '다 내려놓아 편안하다'는 글을 남겼는데, 그 문장이 너무나 아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변두섭 회장(향년 54)의 경우 당초에는 과로사로 알려졌으나, 후에 예당엔테인먼트에서 자살로 사인을 정정한 특이한 경우였다. 한 지인은 "고인의 명예를 지켜드리고자, 자살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돌아가시기 전인 8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왔으며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큰 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털어놨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무리한 사업 다각화로 인한 부채였다. 한때 음반 매니저로 잘 나갔던 변 대표는 '겨울연가'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초 이 드라마 주인공인 최지우의 매니지먼트를 하며 OST까지 발매해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최지우 주연의 '천국의 계단' OST 및 드라마 콘서트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김하늘 장진영 이정재 김아중 김정은 한지혜 등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동시에 영화 '식객' '미인도' 등을 제작하는 등 한류 제작자로 명성을 떨쳤다.

문제는 코스닥 상장사 대표로 거듭나면서 유전 사업 등에 손을 뻗치기 시작하면서 커졌다. 2007년 해외자원 개발회사인 테라리소스를 통해 연예 외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 하지만 유전 사업 등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미다스의 손'이었던 그의 명성에 흠집이 가기 시작했다. 주주들은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변 대표에 대해 집단 소송을 할 움직임까지 보였다.

변 대표의 한 지인은 "1992년 임파선암 진단을 받고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생식요법 등을 통해 완치되실 만큼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셨던 분이셨다. 누구보다 정신력과 책임감이 강했던 분이었는데, 오랜 기러기 생활과 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회의 때문에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연예 관계자들 역시 "국내 최고의 엔터 제작자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현상은 우리 연예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0년 자살한 곽지균 감독 등 영화 감독이나 관련 제작자들이 단 한두번의 사업 실패로, 다시는 재기 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무리한 엔터업계의 구조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엔터업계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라고 토로했다.


이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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