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별그대', 억만광년의 거리가 1m가 된 그 순간..."사랑은 있다"

enews24 이인경 기자 | 입력 2014-01-02 오전 10:51:26 | 최종수정 2014-01-02 오후 4:01:37


여기 운명, 사랑을 믿지 않는 외계인이 있다. 그런 감정의 사건들은 지구인들이 만들어놓은 허상이라고, 단언컨대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니 그 사랑이 보여주는 잠깐의 허상 때문에 당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지구인에게 강의까지 하는 외계인이다.

수억광년의 거리에서 날아온 이 외계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로 믿지 않던 운명의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 아직 상대에게 "1m 거리를 유지해달라"고 경고를 날리지만, 이는 이미 사랑에 빠진 자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나 같다. 수억광년을 뚫고 맺어진 지구인과 외계인의 이 기적과도 같은 사랑. 요즘 지구인들이 열광하는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극본 박지은, 연출 장태유, 이하 '별그대') 속 이야기다.

[리뷰] '별그대', 억만광년의 거리가 1m가 된 그 순간..."사랑은 있다"
# 비현실이 현실이 된 순간, 사랑은 있다

'별그대'는 방송 4회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지난 1일 방송된 5회가 22.5%(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연일 파죽지세다. 10대는 물론 40~50대까지 사로잡고 있는 '별그대'의 블랙홀 매력은 무엇일까? '판타지 로코'라 할 만큼 시공을 뛰어넘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 이야기가 언뜻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비현실적인 요소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그려서 전세대의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별그대'에는 조선시대와 현재 일어나는, 성공을 위한 야망, 믿었던 이에 대한 연정과 배신, 절대 없을 것 같지만 운명처럼 일어나는 기적 등이 교차적으로 촘촘하게 벌어지면서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다. 1609년 광해 1년에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이 400여년간 인간 사이에 섞여 살면서 인류를 관찰한 기록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물흐르듯 펼쳐지는 과정은 흥미롭기 그지 없다.

조선시대엔 그랬다. 열녀문이 욕심난 한 양반 가문은 버젓이 살아 있는 며느리를 생매장하려 했으며, 조정의 신하들은 어려워진 시국을 전환해보기 위해 이 양반가 규수를 희생양으로 잡아들이려 했다.

2014년의 오늘은 다를까? 재벌가인 S&C 그룹의 후계자인 이재경(신성록)은 자신과 결혼을 꿈꾸는 여성 톱스타(유인영)를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었지만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죽인 사람보다 죽이고 싶었지만 살려둔 사람이 더 많다"고 버젓이 말한다. 대중과 연예계 인사들은 앞에서는 톱스타 천송이(전지현)를 떠받들고 모시지만, 뒤에서는 욕하고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 계산하느라 바쁘다.

심지어 천송이의 소꿉동무이자 동료 여배우인 유세미(유인나)도 천송이를 질투하며, 천송이 엄마 양미연(나영희)은 딸을 자신의 생계를 위한 수단, 혹은 보험 정도로 여긴다. 이런 인간 군상을 400년간 지켜보며 도민준이 "역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당연한다. 그는 "석달 뒤 내가 온 별로 미련없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마지막 3개월 동안 기적 같은 운명이 그에게 닥쳐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인도 아닌 도민준이, 그토록 냉소적으로 일컫던 운명에 굴복(?)해 가는 모습은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런 것들을 지구인들은 운명이라고 부른다"며 다시는 인간사에 끼어들어 타인을 돕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민준은 천송이를 무려 네번이나 구했다. 조선시대에 과부였던 시절에 두번, 환생한 현재에도 어린 시절에 한번, 톱스타가 되어서 한번 더 구해냈다. 또 앞으로 그는 천송이를 위해서라면 온갖 불구덩이도 몇번이고 뛰어들어갈 기세다.

이 운명을 믿지 않는 외계인이 지구인과 사랑에 빠진다면, 세상 그 어떤 작은 희망과 기적도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지구인들, 아니 시청자들은 생각하지 않알까? 비록 결국은 "이 역시 드라마일 뿐"이라는 반응으로 귀결될 뿐이더라도,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와 막장 드라마에 지친 대중들이 잠시나마 이 상큼한 판타지 로코를 통해 시원하게 웃고 숨쉴 기운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리뷰] '별그대', 억만광년의 거리가 1m가 된 그 순간..."사랑은 있다"
# 대본-연출-열연, 삼박자의 우주적 하모니

수많은 가벼움들 사이에서 중심을 찾는 박지은 작가의 주제의식은 '별그대'를 보는 가장 큰 묘미다. 배우들의 개성과 매력을 살린 패러디 대사나 카메오 투입, 그리고 매회 쏟아지는 명대사는 드라마의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5회 방송된 부분 중, 도민준이 읽던 책의 한 구절은 벌써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도민준은 잠들기 전 어떤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이 어느 한 여자 아이를 사랑했지만 그 여자 아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게 되면서, 다시는 사랑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내용을 덤덤히 읽는 도민준은 다음 대목은 차마 소리내 읽지 않았다. 그 부분은 "하지만 어디 대답해보렴.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날 수 있겠니"라는 문구였다.

사랑을 인정하기 싫은 도민준의 표정에서 순간 스쳐지나쳐간 망설임은 그에게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변화를 엿보이게 했다. 그런 디테일한 깊이와 센스가 박지은 작가의 역량이며, 도민준에 빙의된 김수현의 배우 본능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날 천송이의 친구로 등장하는 홍사장(홍진경)은 자신의 만화방에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어린 학생에게 "훅 들어오는 거야, 훅. 그게 원래 그래. 마음의 준비따윈 할 시간없이 느닷없이, 뜬금없이, 어이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거지. 원래 첫사랑이 제일 당혹스러운 거거든. 내가 뭘 잘못 먹었나. 돌았나. 미쳤나 싶고"라고 말했다. 도민준에게 천송이도 그러지 않았을까? 400년이란 시간을 통해 켜켜이 쌓여가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그리움이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 되어서 돌아왔다.

운명과 사랑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가벼움과 진지함 사이서 무게중심을 타며 흡입력 있게 써내려가는 게 박지은 작가가 만든 기둥이자 뼈대라면, 장태유 감독의 연출 화법과, 살아숨쉬는 캐릭터를 만든 김수현 전지현 박해진 등 배우들의 열연은 '별그대'를 단단한 집으로 만들어가는 장인의 기술이자 정성이다.

억만년의 거리에서 이제는 1m라는 거리로, 서로 마주보고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두 사람. 그 둘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져, 무의미해질 날이 온다면 언젠가 하늘의 별만 보고도 "사랑은 있다"고 말하는, 그런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SBS 방송 캡쳐


이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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