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순이' 장캡틴 김현정, 중국이 주목한 화가 되기까지

enews24 이인경 기자 | 입력 2014-07-11 오전 10:34:00 | 최종수정 2014-07-11 오전 10:45:12


"삼순이를 괴롭히던 못된 장캡틴, 중국이 주목하는 동양화가가 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장캡틴으로 인기를 모은 배우 김현정(35)이 소화 김현정 작가(소화는 '작은꽃'이라는 의미이자, 김현정이 존경하는 '소화 데레사'라는 성인의 이름에서 따온 그의 세례명이다)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섰다.

[인터뷰] '삼순이' 장캡틴 김현정, 중국이 주목한 화가 되기까지
1999년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광끼' '내 이름은 김삼순' '사랑해, 울지마', 영화 '해변으로 가다' 등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는 2009년 이후 연기가 아닌 미술에 매달려 치열한 5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산물로 서울 화동 아트링크갤러리에서 첫번째 개인전 '묘사와 연기'를 열고 있다.

지난 6월 23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18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11월에는 중국 베이징 금일미술관에 초대돼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아티스트 故 백남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왈종과 나란히 '삼인행'이라는 타이틀로 아시아 전역에 소개된다. 배우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이 아닌, 오롯이 '소화 김현정'이란 이름으로 이뤄낸 성과다.

10일, 고즈넉한 한옥 분위기가 풍기는 아트링크갤러리에서 김현정과 그의 작품들을 만났다. 김 작가는 '아트토크'라는 개념으로, 전시된 15점의 작품을 친절히 설명해줬다. 듣고 느끼다 보니, 그의 인생사가 스쳐지나가면서 내 자신의 삶까지 뒤돌아보게 되는 묘한 울림이 전해졌다. 김현정의 작품은 창의적이고 섬세한 동시에 소박하고 친근하며, 거창하고 먼 주제가 아닌 우리 삶에 맞닿은 일상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연기자가 연기로 소통한다면 화가는 그림으로 소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김현정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김현정은 "과거 연예계에서 일하며, 남에게 보여지는 나에게 신경쓰느라 정작 진짜 '나'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진짜 자아를 알고 사랑해야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는 심리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위안부를 주제로 한 연극 '나비'를 할 즈음이었어요. 위안부 할머니와 손녀딸 역할, 1인2역을 해야 해서 위안부에 대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했죠.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수요 집회도 나가고, 캐나다 공연까지 마무리했는데 연기만으로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5년 정도 이 연극을 한 뒤, 몸과 마음이 지쳤어요. '난 누구이고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죠. 그때 '가톨릭상담봉사과정'을 접하고, 1년 넘게 심라상담 교육과 치료를 받았어요. 상담하면서 어린 시절 내가 여동생에게 양보하느라 나만의 인형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지금이라도 내 인형을 가져보기로 결심했어요. 그때 만난 아이가 제 내면아이(iner child) 랄라(토끼인형 이름)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들에게 세게 보이려 하고, 그럴 수록 힘들었던 김현정은 미숙한 자기 안의 나, '랄라'를 만나 그의 부모가 됐다. '랄라'를 보듬으면서 그는 이제서야 스스로를 치유하고 지킬 수 있었다. 여기에 천주교 문화모임에서 만난 이동천 미술품감정가의 조언과 격려로, 어린 시절 꿈꿨던 화가의 길에 용기내 들어서게 됐다.

[인터뷰] '삼순이' 장캡틴 김현정, 중국이 주목한 화가 되기까지
"처음 부모님에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경상도 분들이라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한숨만 쉬셨죠. 딸 걱정에 막막하셨겠죠. 하지만 제 결심과 노력을 지켜보시고는 이내 뒤에서 한결 같이 응원해주셨어요. 사실 일찍 사회 생활을 하고 돈도 벌어서,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까 제 나이에 비해 큰 돈이 통장에 꽂혀 있는 거예요. 처음으로 내 자신을 위해 투자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자기부터 시작하다가 동양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뒤돌아 보면 그는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의 미술 숙제를 혼자 도맡아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고, 대학에서도 전통의상과를 전공할 정도로 미술과 인연을 맺어왔다. 연예 활동을 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화랑을 찾는 게 휴식이자 낙이었다. 2009년부터 인형치료법으로 만난 '랄라'와 함께,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는 동양화를 공부했고, 중국 치바이스(1860 ~1957)의 화조화에 푹 빠져, '나를 배우면 살고, 나와 비슷한 척 하면 죽는다'는 그의 예술정신을 좇았다.

하루 열다섯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자신만의 화법을 발명해 최근에는 특허까지 냈다. 김현정이 창안한 화법은 비단 그림에 자수를 활용하는 '화주수보'(畵主繡補), 비단 배접지에 그림을 그려 그림을 완성하는 '쌍층'(雙層), 사의화를 공필화로 구현한 '출사입공'(出寫入工)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비단 위에 은은히 베어나온 수묵의 느낌과 화려한 색감의 자수가 포인트로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자수의 느낌은 김현정의 작품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작품이 인상적이었지만, 위안부 할머니의 잃어버린 소녀 시절 모습을 그린 '랄라와 소녀상', 2차 세계대전 때 전쟁고아들이 느꼈을 공포와 위안을 소재로 한 '바케트 십자가'는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애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인상깊었다.

"'랄라와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과 고통을 연기한 배우로서, 일제강점기 개량 한복을 입은 그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서 그렸어요. 슬픔에 잠긴 나의 내면아이 '랄라'가 할머니 손 밑에서 얼굴을 묻고 있죠. '바케트 십자가'는 심리치료를 하며 적는 노트가 있는데 거기에 적힌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에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피란처에서 내일 굶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고 해요. 그때 아이들 머리맡에 작은 빵을 놓아주었더니 잘 잤대요. 삶에서 위안이 되는 것은 사실 아주 작은 존재인거죠. 이는 내면아이를 보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빵을 십자가로 형상화했어요."

든든한 조언자인 이동천씨는 "이왕 화가로 나선 김에 중국미술시장에 진출해보자"고 제안했고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총감독을 맡은 것으로 유명한 펑펑(베이징대 예술학과 주임교수) 선생은 김현정의 그림을 보고 "김현정의 그림에서는 그의 이중자아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아를 묘사하기 위한 타자(랄라)이고, 하나는 자아가 연기한 역할(잠자리)이다. 김현정의 그림은 전통,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했다.

여기서 전시회 타이틀인 '묘사와 연기'란 말이 나온 것이다. 특히 이동천씨는 "랄라 그림은 결코 팝아트의 산물이 아닌 21세기 신 문인화다"라고, 자기 성찰적 의미와 철학을 담고 있는 동양화적 가치를 높이 샀다.

[인터뷰] '삼순이' 장캡틴 김현정, 중국이 주목한 화가 되기까지
"존경하는 백남준, 이왈종 선생님과 삼인전을 연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즘 벅차요. 제가 배우 출인이라 그런지 '취미로 그림 그리는 게 아니냐' '심은하 하정우 따라하는 거 아니냐'고 보는 시선이 있는데 제 작품을 보시고 그런 편견을 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과거 드라마 할 때는 '너 작품 보고 울었다'라는 말이 극찬이었는데 최근엔 팬분들이 '작품 보고 힐링한다' '태교에 좋았다'는 반응을 SNS를 통해 올려주시면 그렇게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연기를 은퇴한 건 아니고, 연기든 그림이든 전력 투구를 해야 하는 분야라 지금은 미술에 힘을 쏟고 있느라 연기는 쉬고 있다고 봐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미약하지만 제 그림이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마음의 숨결'이 되길 바랍니다."

올 2월 그는 '랄라의 외출'이라는 에세이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을 선물로 준 김현정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모 일간지에 칼럼을 1년 넘게 연재했어요. 그 글들을 모아 제 그림과 함께 책으로 엮은 것인데 저처럼 내면아이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해요. 사실 내면아이를 키운다는 게 큰 돈 드는 일은 아니잖아요?"라며 웃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돌아와 조용히 읽어본 그의 책에는 인생에 참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고 어떤 글귀는 적어놓고 싶을 만큼 깊이 와닿았다.

"그동안 나는 '예술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믿음에 예술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세상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언제 누구에게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 귓가에 언뜻 언뜻 맴도는 말이 있다. '작은 일을 큰일처럼, 큰일을 작은 일처럼. 시작은 마지막처럼, 마지막은 시작처럼', 처음에는 말장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이 궤변만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 가톨릭 성녀 소화 데레사는 불안과 두려움에 지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매 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조용히 쉬지 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습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세상이 달리보인다. 아름다워보인다. 소화 김현정 작가와의 인터뷰가 준 일상의 축복이자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진=허정민 기자, 그림 설명(랄라와 소녀상, 바케트 십자가, 잠자리 천국, 랄라 독립도-왼쪽부터)


이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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